위대한 선수 no.38 존 하블리첵
- no.38 존 하블리첵
- 2016년 11월 21일
- 2분 분량

최초의 스타 식스맨 하블리첵
출생: 1940년 4월8일 오하이오
출신교 오하이오 주립
드래프트: 1962년 보스턴 셀틱스(1라운드9번)
신장:196cm
체중:93kg
StartFragment주요 수상경력 : 명예의 전당 헌액(1984년), NBA 우승 8회(1963·64·65·66·68·69·74·76년), All-NBA First Team 4회(1971·72·73·74년), All-Defensive First Team 5회(1972·73·74·75·76년), 올스타선정 13회 '혼도'(혼도라는 별명은 53년에 만들어진 존 웨인 주연의 동명 서부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존 하블리첵은 NBA 최초의 스타 식스맨이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없었던 '식스맨'이라는 개념이 하블리첵에 의해 정립됐고, 보스턴은 이에 힘입어 왕조를 유지해갈 수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탄광촌에서 자란 하블리첵은 워낙 달리기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부모님이 사주지 않아 자전거가 없었던 하블리첵은 달리기로 친구들의 자전거를 따라잡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로에서도 체력 만큼은 항상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야구와 풋볼, 농구에서 모두 주 대표에 뽑힐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 하블리첵은 80야드를 던질 수 있는 강한 어깨 때문에 쿼터백 유망주로 각광받았다. 대학 1학년때 평균 4할 타율을 때리며 야구 재능도 드러냈던 하블리첵은 농구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60년 NCAA 패권을 차지했다. 하블리첵은 62년 신인 드래프트서 NBA뿐만 아니라 NFL에 지명되기도 했다. NFL의 클리블랜드 브라운스는 7라운드에 하블리첵을 지명하며 와이드리시버로 키울 복안이었다. 62년 루키로 데뷔한 하블리첵은 전설적인 밥 쿠지, 빌 러셀, 빌 샤먼, 프랭크 램지 틈에서 주전자리를 꿰차지 못했지만 벤치에서 위기 상황마다 출장,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평균 14.3점을 기록한 루키 시즌에 하블리첵의 주요 공격 루트는 쿠지의 패스를 속공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루키 시절 하블리첵의 다양한 허슬플레이와 강력한 수비는 인상적이었지만 동료이자 대선배인 쿠지의 평가는 냉랭했다. 하블리첵이 결코 슈터는 아니라는 것. 루키 시즌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온 하블리첵은 슛과 드리블 연습에 매진하며 자신을 담금질했고, 이는 다음 시즌 평균 19.9점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벤치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된 하블리첵은 은퇴한 쿠지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며 보스턴의 리그 6연패를 이끌었다. 리그 초창기 최고 스타였던 쿠지가 내린 평가는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이후 5시즌이나 더 식스맨 역할을 한 하블리첵은 여느 팀의 주전보다 훨씬 훌륭한 활약을 펼치면서 팀내서도 가장 빼어난 클러치 플레이어로 군림하게 된다. EndFragment
Comentar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