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수 50인 no.12 래리 버드
- no.12 래리 버드
- 2016년 11월 21일
- 3분 분량

미국 프로 농구 보스턴 셀틱스에서 뛰었던 농구선수이다. 별명으로는 The Hick from French Lick, LarryLegend 등이 있다.
인디애나 주 웨스트 배든에서 출생하여 그 이웃 프렌치 리크에서 자라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1974년에 농구명문인 인디애나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였으나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또 학교선배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얼마안간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뒤 고향에 내려가 쓰레기 수거, 눈치우기 등을 하면서 1년을 허비하다가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농구부 코치 빌 허지로부터 입학제의를 받고 다시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975년부터 1979년 인디애나 주립대학교에서 4년을 뛰며 최고의 대학농구선수로 군림하였다. 특히 1979년 4학년 시즌이 유명한데 당시 미시건 주립대 2학년 매직 존슨과 대결은 아직도 미국 농구팬들의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NBA 역대 최고의 라이벌로 불리는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은 처음 만난건 NBA가 아니라 1979년 NCAA 농구결승전이었다. 당시 버드는 1978년 NBA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셀틱스로부터 5번픽으로 지명을 받은 상태였지만 NCAA 우승을 위해서 NBA 데뷔를 1년 미룬상태였다.(현재는 드래프트에서 계약에 실패하며 다시 드래프트에 참가해야되지만 당시에는 'Junior Eligible'규정이라고 지명을 받은 3학년 선수에게는 1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주었다.) 결승전에서 만난 두 선수는 결국 매직 존슨의 미시건 주립대학의 승리로 끝났고, 버드는 결국 우승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NBA에 데뷔하게 되었다. 매직 역시 2학년을 마치고 NBA 진출을 선언했고, 1979년 드래프트에서 LA 레이커스에 1순위 지명을 받고 버드와 같은 시즌에 NBA에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시즌부터 20득점-10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신인으로서는 당당하게 NBA 퍼스트팀에 선정되었고, 신인왕 역시 그의 몫이었다.(매직은 NBA 파이널 MVP를 차지) 그 이후 보스턴 셀틱스와 수많은 영광을 함께했는데 3번의 NBA 파이널 우승, 2번의 파이널 MVP, 그리고 센터가 아닌 포지션으로 최초로 MVP 3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하였다.(이 기록은 버드 이후에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버드도 등부상을 당한 이후에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고, 결국 91-92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버드의 은퇴식 당시 매직 존슨이 특별손님으로 초청되면서(매직은 버드의 유니폼을 입고 등장)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빠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은퇴이후 1992년 여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프로선수들 참가가 허용되면서 일명 'Dream Team' 불리는 농구역사상 최강의 팀 일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하였다. 역시 에이즈 바이러스인 'HIV'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은퇴했지만 올림픽에 참가했던 매직 존슨과 함께 공동주장을 맡았다. 등번호는 33번 대신 7번을 달았다.(올림픽은 등번호를 15번까지만 달 수 있다.) 미국은 43.4점이라는 득실마진을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8젼 전승으로 우승하였다. 그 이후 버드는 완전히 선수에서 은퇴하였다.
버드의 플레이스타일을 알려면 빌 러셀을 말을 들으면 알 수 있다. '버드는 코트에서 일어나는 모든일을 슬로우모션처럼 볼 수 있다.' 당시 백인은 흑인들의 운동능력을 당해내지 못해 NBA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는 백인이 없던 시절이다.(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하지만 버드는 Bird's Eye라고 불리는 농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농구 센스를 바탕으로 흑인이 판치던 농구코트를 지배하였다. 보통 버드를 슛쟁이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버드는 골밑에서 몸싸움을 즐겨했던 터프파였다. 3점이나 점퍼는 그의 다양한 공격 옵션 중 하나에 불과했다. 완벽한 포스트업 기술을 구사했으며, 자유자재로 슛을 던지기도 했다. 버드의 영상을 보면 희안한 자세에서 나오는 서커스슛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시야에서 나오는 패스까지 포인트포워드의 원조는 스카티 피펜이지만 농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패스웍을 선보였던 포워드는 버드일것이다. 당시 라이벌이자 최고의 포인트가드였던 매직 존슨과 누가 뛰어난 패서인가라는 설문도 있을 정도였으니. 한마디로 '운동능력'을 제외하고 완벽한 선수였다.
슈퍼컴퓨터가 뽑은 최고의 농구 선수도 마이클 조던이 아니라 '흑인으로 태어난' 래리 버드였다. 버드의 명장면중에서도 첫 번째로 꼽히는 휴스턴 로케츠과 파이널에서 나온 '자기가 던진 슛이 안들어가고 링을 맞고 나오자 본인이 다시 잡아서 넣기'는 그의 BQ를 볼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버드는 평소때도 자기의 슛이 안들어가는걸 감지하고 리바운드를 잡을려고 골밑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는 정말 뛰어난 감각이 없으면 할 수 없는 플레이일것이다. 이 장면을 본 레드 아워벅은 '나의 농구인생에서 내가 본 가장 뛰어난 플레이였다' 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1998년에 NBA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2010년에는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뛰었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Dream Team'이 FI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헌액 인터뷰를 버드가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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