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수 50인 no.8 데이브 빙
- 태규 이
- 2016년 11월 21일
- 2분 분량

앞으로 가는게 아니라 희망을 찾으려하는 의지가 전진하게 만드는거야! '장애를 극복한 가드' 데이브 빙 신인왕(67년) 퍼스트팀 2회 선정(68,71년) 세컨드팀 1회(74년) 올 루키팀(67년) 올스타전 7회 출장(68,69,71,73,74,75,76년) 12시즌을 뛰었고 평균 20.3득점, 3.8리바운드, 6개의 어시스트, 자유투 성공률.775 4데이브 빙은 다섯살 때 못이 박힌 막대기를 가지고 말타기 놀이를 하면서 뛰어오르려다 바닥에 떨어지면서 막대기에 막힌 못이 왼쪽 눈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다. 수술로 실명은 면했으나 평생 나쁜 시력으로 고생했다. 이런 사고는 어떤 이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될수도 있었으나 빙은 도전으로 받으들였고 정면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는 고등학교때까지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만능스포츠맨이었으나 시라큐스에서 올-어메리칸 농구선수가 되었고 NBA 최고의 득점자가 되었다. 선수생활 중기에 접어들던 때쯤 그는 뜻하지 않게 오른쪽 눈까지 부상을 입었고 망막 일부에까지 상처를 입었다. 입원하여 3일동안 칠흑같은 어둠의 세계에 갇혀있었고 의사는 상처로 인해 선수생활을 중단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용감하게 맞섰고 20득점자로서 부활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재활에 힘썼고 마침내 1976년 NBA 올스타전에서 MVP의 영예까지 안았다. 침착하고 겸손하지만 현실적이고 뛰어난 결단성을 지닌 빙은 부상을 극복하여 스타급 선수가 되었고, 연매출 6천만달러의 제강회사를 설립하여 어린이 복지향상에 이바지하여 시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그의 오랜 경쟁자 오스카 로버트슨은 "데이브는 프로정신, 위엄, 인간애의 완벽한 표준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농구코트에서 빙은 로버트슨, 제리 웨스트, 월트 프레지어, 얼 몬로와 같은 화려한 백코트맨들의 그림자에 가려서 존재가 희미해지긴 했지만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에서 프로 9시즌을 보내면서 어느 선수 못지않게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돌파력과 점프슛이 좋은 득점자였으나 동시에 뛰어난 플레이메이커이기도 했다. 빙은 66/67시즌에는 NBA신인상을, 다음해에는 평균득점27.1로 리그 최고득점자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NBA가 20번의 시즌을 거치는 동안 가드로서는 처음으로 기록한 일이었다. "그는 최고입니다. 빙은 자신의 득점력과 패스로 팀을 단결시키는 위대한 통솔력을 지닌 선수였습니다. 가드로서 할 수 있는 모든걸 해낸 전설적인 인물입니다."라고 팀동료 밥 라니어가 말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속해있던 9시즌동안 피스톤스는 단 한번도 NBA 결승전까지 진출하지 못했다. 그 후 빙은 고향인 워싱턴 불리츠에서 2시즌, 보스톤 셀틱스에서 1시즌을 보내고 NBA 프로생활을 접었다. 은퇴 이후 디트로이트에 설립했던 '빙 제강회사'는 10년 안에 미국내 흑인소유의 기업 10위 안에 들었고, 1978년에 퇴직하면서 올해의 중소기업인상과 올해의 소수공급업체상을 수상했다. 빙은 "농구는 흥미진진한 게임이며 기량의 심판대입니다. 경기가 잘 풀리는 밤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고 통일감과 조화로움은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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