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선수 50인 no.45 패트릭 유잉
- no.45 패트릭 유잉
- 2016년 11월 21일
- 4분 분량

뉴욕 닉스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뉴욕 닉스의 역대 득점, 리바운드, 블록슛 등의 통산 기록 제일 꼭대기에는 그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90년대 NBA는 정말 명센터들의 천국이었고........그 중 소위 회자되는 4대 센터.......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샤킬 오닐(오닐 등장 이전까지의 4대 센터라 하면 클리블랜드 브래드 도허티가 있었고......) 이외에도 알론조 모닝이나 디켐베 무톰보와 같은 각자의 개성이 철철 넘치는 빅맨들이 우글거렸던 90년대 NBA의 골밑........ 오늘날까지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간혹 4대 센터 중 가장 위대한 이가 누군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고......그럴때마다 어떤 관점에서 4대 센터중 가장 평가절하되는 선수가 바로 패트릭 유잉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다......유잉은 올라주원에 비해서는 테크닉과 유연성이.......로빈슨에 비해서는 스피드가, 오닐에 비해서는 파워가 밀리는......좋게 말하면 밸런스가 잡혀있는 제대로 된 정통 센터이지만 4대 센터들과 비교했을 경우에는 모든 면에서 밀리는 선수가 바로 유잉이라고....... 스탯 상으로 보면 분명 그렇다.......올라주원 오닐 로빈슨에 비해 그의 통산 스탯은 약간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다......그리고 4대 센터 중 유일하게 챔피언 반지가 없다는 점 역시 그의 약점 중 하나이다....... 하지만.....경기에 임하는 그의 열정은......그 어떤 센터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그의 플레이는 다른 세명의 센터들과는 달리 묘한 어떤 감정을 주고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올라주원은 두번째 우승 당시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굴지의 슈팅 가드를 조력자로 두고 있었고......로빈슨은 선수 말년 우승 반지를 차지할때 팀 덩컨이라는 역사상 최강의 파워 포워드와 함께 했었다.......오닐은 루키 시절 이후 앤퍼니 하드웨이, 코비 브라이언트, 드웨인 웨이드, 그리고 지금은 스티브 내쉬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같은 톱 플레이어들과 함께 플레이를 했었다....... 하지만 유잉은......물론 90년대 유잉의 전성기 시절 닉스의 선수 구성도 나쁘진 않았다........투지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존 스탁스와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보여주었던 포인트 가드 데릭 하퍼, 그리고 골밑에서 그의 든든한 보디가드였던 블루 워커의 대명사 찰스 오클리......이외에도 엔쏘니 메이슨, 찰스 스미스와 같은 괜찮은 선수들이 그와 함께 했었다........하지만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과 비교했을때 그의 조력자들의 힘이 한참 떨어진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유잉은 자신의 전성기 대부분을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던 조던과 함께 했다........그 위대한 선수와 같은 컨퍼런스에 소속되어 수많은 격전을 치루었고 이기기도 혹은 지기도 했지만 결국 최종 파이널 진출팀은 뉴욕이 아닌 시카고였다...... 조던의 첫번째 은퇴 이후인 1994년 닉스는 드디어 염원하던 NBA 파이널에 진출......올라주원이 이끄는 휴스턴 로켓츠와 일전을 벌인다......결과는 게임 스코어 4:3으로 휴스턴의 승리.......유잉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올라주원을 상대로 골밑에서 대등한 싸움을 벌였지만 올라주원의 활약은 유잉보다 좀 더 좋았고.......시리즈 내내 버논 맥스웰과 스미스로 구성된 휴스턴 가드진을 압박했던 존스탁스와 데릭 하퍼의 닉스 가드진은 7차전 믿기지 않는 부진을 보이며 결국 챔피언 타이틀을 휴스턴에게 넘겨주게 된다..... 단축 시즌으로 운영된 1998-99 시즌 유잉은 아킬레스 건 부상을 이겨내고 또다시 팀을 결승에 진출시켰다.....당시 닉스는 8번 시드였고 닉스의 결승 진출은 8번 시드 팀 역사상 최초의 파이널 진출이었다...... 하지만 페이서스와의 혈전으로 점철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무리한 유잉은 결국 결승 리그를 제대로 뛸 수 없었고......유잉이 빠진 닉스의 골밑은 로빈슨과 던컨으로 구성된 스퍼스의 트윈 타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우승을 할 수 있었던 유잉의 마지막 기회였었다...... 99-00시즌은 이미 고질화된 부상으로 그의 역량은 하락세로 완연하게 접어들었고.....그는 62경기에 출장하여 평균 32.8분을 플레이하며 평균 15점에 9.8리바운드를 잡아냈으며 플레이오프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제압하며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레지밀러가 이끄는 페이서스에 결국에 패배......이것으로 뉴욕에서의 그의 커리어는 끝나게 된다....... 00-01시즌을 앞두고 팀 리빌딩을 선언한 뉴욕 닉스는 이 베테랑 센터를 더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그를 시애틀 슈퍼 소닉스로 트레이드 하였다.......그리고 01-02 시즌 그는 다시 올랜도로 트레이드되는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솔직히 시애틀과 올랜도에서 보낸 그 2년의 시절......그의 커리어는 실제로 마무리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플레이 타임은 축소되었으며 루키 시즌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 득점으로 득점력 역시 추락하였기 때문이다......결국 01-02 시즌을 끝으로 그는 그의 화려했던 17년 동안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고 은퇴를 선언하였다........ 챔피언 반지를 결국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커리어는 화려하다.......1985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번 픽으로 뉴욕 닉스에 지명되어 첫 시즌인 85-86 시즌 부상으로 전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지만 50경기 출장에 평균 35.4분을 플레이하며 평균 20.0 득점, 9.0 리바운드, 2.0 어시스트, 1.1 스틸, 2.1 블락슛을 기록하며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며 그의 화려한 커리어의 시작을 알렸다...... 그 외 All-NBA first team 1회(1990 - 82경기 출장, 평균 28.6 득점, 10.2 리바운드, 2.2 어시스트, 1.1 스틸, 4.0 블락슛, 필드골 성공률 55.1%), All-NBA second team 6회(88, 89, 91, 92, 93, 97), All NBA Defensive second team 3회(88, 89, 92), 11번의 올스타 선발 및 NBA 위대한 50인에 선정, 그리고 두번의 올림픽 금메달(84, 92).....그리고 작년......그는 대학 시절과 프로 시절 내내 자신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올라주원과 그리고 닉스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명장 팻 라일리와 함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NBA 통산 17시즌에 걸쳐 1183경기 출장(이중 선발 출장 1122), 평균 21.0득점(통산 24,815점), 9.8 리바운드(11,607 리바운드), 2.4 블락슛(2894 블락슛), 1.9 어시스트에 1.0 스틸을 기록했다.......17년 동안의 커리어 동안 총 14차례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며 파이널 2회 진출(물론 그 중 98-99시즌 스퍼스와 파이널에는 결장했지만)....... 그는 우승을 할 충분한 자격과 능력 그리고 열정을 가진 선수였지만 항상 그 문턱에서 좌절을 맛보았던 선수였다....... 킹콩을 연상시키는 투박한 외모지만 NBA 선수 노조 위원장을 지낼만큼 그는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인물이었다...... 상대의 슛을 블락하거나 혹은 상대 수비수 위로 덩크를 꽂으며 포효하는 그의 모습은 뉴욕의 상징과도 같았고 상대팀에게는 공포를 팀원들에게는 신뢰를 주는 그런 선수........존재감만으로도 그 어떤 선수와 대적을 해도 밀리지 않을듯한 그런 모습을 보여준 진정 위대한 플레이어였다.......(물론 피펜이나 조던과 같은 자신보다 작은 플레이어에게 인 유어 페이스 덩크를 당하고는 허탈하게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도 동시에 오버랩된다........) 그의 투지와 열정을 잘 보여주는 일화 중 하나......97-98 시즌 유잉은 손목 탈구와 인대 부상으로 많은 게임에 결장하였다.(26경기 출장, 20.8득점, 10.2 득점)......유잉의 재활 기간 중 뉴욕의 포워드인 래리 존슨(아.....샷럿 호넷츠의 로망이여.....)은 이렇게 말했다......"나는 내 자신을 하드 워커라고 생각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불릴만 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유잉이지 뭐) 연습 시작 1시간 전에 이미 경기장에 나와 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는 곧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시즌을 접어야 된다는 의사의 충고를 비웃듯 그는 시즌 막판 돌아와 훌륭한 활약으로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 유잉은 2003년 2월 28일 그의 선수 생활에 모든 것이 남아있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하프타임 전 온 경기장에는 "Patrick Ewing"이라는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기만하였고 영원히 울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었다......... 그렇다 그는 분명히 올라주원 로빈슨 오닐과 비교하면 모든 측면에서 조금 쳐지는 4대 센터 중 말석을 간신히 차지하는 센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팀에서 팀 동료들과 그리고 팀의 팬들에게 그 정도의 지지와 존중을 받으며 열정적인 플레이를 펼쳤다는 점에서 그는 그 어떠한 센터와 비교해도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단순 스탯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던 너무나 매력적인 빅맨.......객관적 관점에서 역대 최강의 센터는 올라주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하지만 내 기억 속 가장 위대한 센터는 바로 킹콩 패트릭 유잉이다....... 가장 위대한 선수였던 마이클 조던은 패트릭 유잉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는 챔피언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뉴욕에 대해 생각하면, 당신은 패트릭 유잉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뉴욕이라는 이 대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은 존재였으니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