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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수 50인 no.42 케빈 맥헤일

  • no.42 케빈 맥헤일
  • 2016년 11월 21일
  • 1분 분량

1980년대 보스턴 셀틱스 왕조에서 래리 버드, 로버트 패리시와 함께 3번의 우승, 2번의 준우승을 이뤘다. 이들 3명은 역대 최고의 프론트 코트로 손꼽히기도 한다. 데뷔 초기에는 주전 포워드 세드릭 맥스웰의 백업이었던 식스맨이었고, 1984년과 1985년 2차례 식스맨 상을 받았다. 1984-85 시즌 도중 세드릭 맥스웰이 무릎 부상으로 빠지자 본격적인 주전 선수로 투입되기 시작했다. 13시즌동안 보스턴에서 17.9점(FG 55.4%), 7.3리바운드, 1.7블록, 1.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번의 식스맨 상을 받았고 1번의 ALL-NBA 1st TEAM 과 2번의 NBA All-Defensive 1st TEAM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올스타에도 7번 선정되었다. 커리어 하이인 1986-87 시즌에는 평균 득점 26.1점(FG 60.4%), 9.9리바운드, 2.2블록, 2.6어시스트을 기록했고, 이해 ALL-NBA 1st Team과 NBA All-Defensive 1st Team에 선정되었고, 이해 MVP 투표에도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의 등번호 32번은 보스턴 셀틱스의 영구결번으로 선정되었고, 1996년 ESPN이 선정한 NBA 역사상 위대한 선수 50인 중 1명에 선정되었다. 2016년 ESPN이 선정한 NBA 랭킹 31위(PF 랭킹 6위)에 선정되었고##, SI에 선정한 NBA 랭킹 49위에 선정되었다.## 1980년대 보스턴 셀틱시의 래리 버드-케빈 맥헤일-로버트 패리시의 3인방은 LA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카림 압둘 자바-제임스 워시의 3인방과 자주 비교되곤 했다. 이들 6명은 나중에 모두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은퇴후 1995년부터 2008년까지 고향팀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단장(GM)으로 재직하면서 케빈 가넷을 영입하여 울브스를 플옵 컨텐더 팀으로 만드는 데 공헌했으나, 2000년에 터진 조 스미스 이면계약 파동으로 5년 동안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박탈당하는 등의 물의를 빚기도 했다. 울브스가 한창 암흑기에 접어들 무렵인 2005년과 2008~2009년 두 차례에 걸쳐 감독을 지내기도 했다. 2011년 휴스턴 로케츠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결국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2015년 11월에 해임되었다. 그 외에도 TNT 등지에서 농구 해설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Inside the NBA All-Star Ultimate Fantasy Draft에서 자신의 팀의 모든 선수들을 보스턴 셀틱스 출신으로 채웠다. 원클럽맨으로서 아직도 셀틱스에 깊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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