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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선수 no.39 줄리어스 어빙

  • no.39 줄리어스 어빙
  • 2016년 11월 21일
  • 2분 분량

닥터 J, Mr.ABA

농구 역사에 있어서 마이클 조던,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바로 윗 세대에서 70~80년대 초까지 미국 농구를 이끌던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모지스 말론과 함께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매우 떨어지는 농구 레전드중 하나인데, 이는 어빙과 말론의 시대인 70년대~80년대 초는 NBA의 암흑기이자 파이널 녹화방송의 흑역사시기였기 때문. 그 후배들인 매직과 버드가 NBA의 흥행과 세계화를 이끌면서 NBA가 인기를 회복하지만 그때는 이미 어빙과 말론의 시대가 지나가버렸다.

또한, 말론과 함께 어빙은 NBA 레전드인 그가 ABA의 전설의 레전드인 탓에 동시대 NBA에서 최강자였던 오스카 로버트슨, 카림 압둘 자바같은 슈퍼스타에 비하면 통산기록이나 리그에 남긴 족적들이 부족하기에 인정받기 어려운 것.

그래도 은퇴후 어빙은 NBA TV에서 제작한 OPEN COURT, INSIDE THE NBA에도 종종 출연하고 슬램덩크 콘테스트 심사위원이나 기타 이벤트에도 자주 참여했다. 어빙과 활동시기가 비슷한 빌 월튼은 NBA 레전드이고 미국내 인기도 상당했지만 한국에선 어빙 이상으로 인지도가 없다. 모지스 말론이나 다른 ABA 스타들에 비하면 어빙이 암흑기 슈퍼스타중엔 가장 꾸준하게 대외활동을 해온 편

1950년 2월 22일 뉴욕 주의 루즈벨트라는 곳에서 출생했다. 그는 학생시절부터 뛰어난 기량으로 루즈벨트 고교를 이끌었고. 길거리 농구의 전설 러커 파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Dr.J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고교를 졸업한 어빙은 1968년 매사추세츠대학에 입학해 평균 26.3점-20.2리바운드을 기록하며 대학농구를 폭격한다

이미 대학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던 이 농구천재를 NBA가 주목하지만, NBA는 대학을 졸업해야 드래프트에 지명될 수 있었고 어빙은 좀더 일찍 농구로 돈을 벌고 싶어했다. 그런 어빙의 눈에 들어온 리그는 당시 NBA의 경쟁 리그였던 ABA. NBA의 후발주자로써 NBA를 따라잡기 위해 파격적인 시도[1]를 해오던 ABA는 과감하게 대학 중퇴선수에게도 문호를 개방했고, 어빙은 대학 3학년을 마친 1971년 ABA의 버지니아 스콰이어스에 자유계약 선수로 입단했다[2]. 그리고 루키 시즌 어빙은 평균 27.3점을 기록하고 ALL-ABA 세컨드팀에 선정됐으며 신인상까지 거머쥐고, 스콰이어스는 45승 39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둔다.

ABA에서 화려한 루키시즌을 마친 어빙은 1972년 NBA 드래프트 지원이 가능하게 되자 NBA 드래프트를 신청한다. 그는 1라운드 12위로 밀워키 벅스에 지명되지만, 실제로는 그의 에이전트가 어빙과는 상관없이 애틀랜타 호크스와 계약을 맺게 되어 삼중계약자(스콰이어스,벅스,호크스) 신분이 된다. 때문에 가장 먼저 계약했던 스콰이어스가 어빙과 NBA에 소송을 걸고, 승소하면서 어빙은 ABA 스콰이어스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계약난항 끝에 스파이어스에서 1시즌 더 뛴 어빙은 ABA의 최강팀인 뉴욕 네츠로 트레이드된다. 어빙의 몸값을 감당하기에 스콰이어스의 자금이 너무 부족했기 때문. 뉴욕 네츠에서 활약한 어빙은 2차례의 득점왕, 3연속 MVP, 2차례 플레이오프 MVP등 ABA를 씹어먹는 대활약을 했다.

줄리어스 어빙의 이름을 드높인 것은 1972년 열린 슈퍼게임 2. 올스타전항목에 일부 소개되어 있지만, NBA vs ABA의 대결이었던 이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ABA를 이끄는 차세대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다.

ABA시절의 맹활약에도 ABA는 결국 NBA와의 흥행대결에서 패했고 ABA는 도산했다. ABA에 속해있던 팀중 덴버 너기츠, 뉴욕 네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4팀은 NBA에 편입되었다. 어빙의 소속팀 네츠는 NBA에 편입했지만, NBA에서는 이들 ABA팀을 이런 저런 문제로 압박했으며 뉴욕 네츠는 결국 줄리어스 어빙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왜인지는 브루클린 네츠문서를 참조바람.

그렇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소속으로 NBA에 데뷔한 줄리어스 어빙은 팀내 득점 1위(21.6)와 리바운드 2위(8.5)에 오르며 유일하게 82경기를 모두 출전하여 팀을 이끌었고 식서스는 76-77시즌 NBA 파이널에 진출했다. 아쉽게도 빌 월튼이 이끈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패배했지만 어빙이 이끄는 식서스는 동부의 강력한 우승후보팀이었다. 식서스를 지속적으로 강팀으로 이끈 어빙은 80-81시즌 리그 MVP에 올랐다. 이 때 보스턴 셀틱스의 래리 버드가 2위에 올랐는데, 이는 이후 'The Bird vs Dr.J'라는 향후 10년을 넘게 이어갈 라이벌 시리즈의 시작이었다.[3] 셀틱스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식서스는 우승을 위해 휴스턴 로케츠에서 81-82시즌 MVP 모세스 말론을 영입했고, 결국 82-83시즌 보스턴 셀틱스를 동부 파이널에서 꺾고 세미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뉴욕 닉스를,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밀워키 벅스를 물리치고 올라갔으며, 파이널에서 매직 존슨,카림 압둘 자바가 이끌던 LA 레이커스를 스윕하며 식서스의 통산 3번째이자 마지막 NBA 타이틀을 얻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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